[유머리더십] #02.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에 담긴 위트와 지혜

최규상 유머코치
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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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가슴에 항상 새겼던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다. 학교에서 마틴의 영화를 보며 공부했다.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영광이다"

그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가리키자 참석자들이 마틴 감독에게 기립박수를 선사합니다. 



오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기생충"으로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위트 있는 수상소감 내용입니다. 마틴 감독을 자신의 스승이라 치켜세우는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평소에 봉준호 감독의 위트는 영화 속뿐 아니라 인터뷰와 다양한 시상식에서 빛났습니다. 그의 위트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 칭찬과 겸손이 들어있으면서 자신감까지 드러내면서 듣는 사람들을 한방에 무장해제시키고 웃음을 터뜨리게 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화법을 봉준호식 화법으로 격상시키면서 봉준호 감독을 한껏 띄워줍니다. 특히 허를 찌르는 봉준호식 촌철살인은 미국 언론들과 SNS에서 회자될 정도로 인기가 있습니다. 오늘은 봉준호 감독의 위트 속에 숨어져 있는 그만의 매력과 위트 기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그의 위트 속에는 품격 있는 비유가 함께 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위트가 처음으로 제 가슴에 들어온 것은 설국열차를 개봉한 이후의 인터뷰에서였습니다. 그는 우연히 설국열차 만화를 보면서 감동합니다. 그리고 프랑스 만화의 원판을 직접 두 눈으로 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프랑스 원판을 보게 되었을 때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표현합니다. 


“흡사 절대반지를 얻은 골룸이 된 기분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바라보며 두 눈을 희번덕거리던 골룸의 이미지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영화에서 골룸이 잃었던 절대반지를 찾아 손가락에 끼우면서 짓는 환희에 찬 표정은 잊지 못할 정도로 명장면입니다. 원작을 찾았을 때의 감동을 골룸의 절대반지를 획득한 표정에 비유하다니! 


그의 절묘한 비유에 웃음이 절로 터졌습니다. 골룸 비유멘트는 오랫동안 제 기억속에 명품 위트로 남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유를 잘하는 사람을 천재라 불렀다지요. 

“비유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남에게서 배울 수 없는 천재의 특징이다. 왜냐하면 비유를 능숙하게 다룬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물들의 비슷한 점을 빨리 간파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혀 공통점이 없는 두 사물, 두 개념 간의 비유는 역발상과 같은 기발함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창의적인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비유적인 표현에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2007년 넷플릭스 영화 '옥자'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할 때도 그의 비유 감각은 진가를 발휘합니다. 그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소감을 남깁니다.
"전 세계 까다로운 팬들이 시골 마을에 모여 내 영화를 본다는 점에서 불타는 프라이팬에 올라가는 생선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2020년 1월 5일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 수상 소감도 적절한 비유로 웃음을 만들어내며  큰 박수를 받습니다.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어는 영화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그의 대표적인 히트작인 괴물을 만들 때도 비유 감각을 발휘합니다. 제작사인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를 만나 딱 한 장짜리 제안서를 내민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제안서에는 한 장의 합성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바로 ‘네스’ 호수에 나온다는 전설 속의 괴물 네씨를 한강변 63 빌딩과 합성한 사진이었습니다.  봉 감독은 이 그림을 보여주고 이렇게 말합니다.
 "한강변에 이런 괴물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그의 천재적인 비유 감각은 웃음을 만들면서 상대를 설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두 번째, 그의 위트 속에서는 상대를 띄우는 겸손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 최초의 황금종려상인데, 마침 올해가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이다. 칸영화제가 한국 영화에 의미가 큰 선물을 줬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혼자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김기영처럼 많은 위대한 감독들이 있었다"

한마디로 한국 영화계 전체로 자신의 성공을 돌리는 겸손함으로 듣는 이들에게 인간적인 즐거움을 제공합니다.


또한 그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독창성을 인정받은 소감을 묻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비록 골든글로브에 와있지만, BTS(방탄소년단)가 누리는 파워와 힘은 저의 3천 배가 넘는다. 

그런 멋진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나라다. 한국은 감정적으로 역동적인 나라이다."


자신을 띄울 수 있는 인터뷰인데도 불구하고 BTS를 띄우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띄웁니다. 자신을 슬그머니 낮추는 멘트는 봉준호 감독을 더 위대한 인물로 부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상대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칭찬하는 사람이 부상하는 원리와 같습니다. 봉 감독은 연일 수상 행진 속에서도 절대 겸손함을 잃지 않습니다. 그의 겸손함 속에 여유 있는 웃음이 숨어있습니다. 


세 번째 그의 위트 속에서는 솔직함이 있습니다.

오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영화상을 수상하면서 했던 봉준호 감독의 멘트에서 그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면서 웃음을 만들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새벽까지 술을 마실 준비가 되었습니다."


미국 뉴욕비평가협회 시상식에서도 봉준호 감독은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합니다. 그때 단순하면서도 솔직하게 소감을 대신합니다. 전형적인 미국식 위트라서 많은 참석자들이 박수와 환호성으로 화답합니다. 

"시상식 중에 처음으로 아시아 음식이 나와서 좋다. 내려가서 계속 먹겠다. 땡큐"


봉 감독은 종종 엉뚱한 말로 웃음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의 돌직구성 인간미가 풍깁니다. 칸영화제에서 기생충 상영 이후 8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지자 봉 감독은 "집에 갑시다"라고 외칩니다. 당연히 그 말에도 웃음이 터집니다. 또한 영화제를 마치고 인천공항에 귀국했을 때 한 기자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습니다.

"충무김밥이 먹고 싶다"

이 말에 기자들은 웃음을 터뜨립니다. 당시 통영시장은 "통영에서 제일 맛있는 충무김밥집에 모시겠다"며 초청 의사를 밝혀 화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게 된 그의 어록을 내려놓습니다. 그의 영화 철학은 앞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감독의 말을 학창 시절부터 읊조리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꿉니다. 이 말을 디딤돌 삼아 그는 자신만의 어록으로 발전시킵니다. 

"가장 독창적인 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독창적이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히 천착해 들어가야 합니다. "


남에게 없는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를 찾는 것이 독창성의 시작이며 창조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봉준호 감독의 말에 살짝 숟가락을 얻어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독창적인 유머는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 속에 알알이 박혀있는 웃음을 찾아내고, 삶을 유머러스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을 웃기려는 마음보다 스스로 즐겁게 살려고 할 때 가장 유머같은 삶이 됩니다."라고! ㅋ 봉준호 감독님!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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